책 읽기의 '의무감' 으로부터 벗어나기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 부분을 읽다 보면, 수도원 내 살인사건을 추적하던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가 사건의 진범인 맹인 수도사 호르헤와 대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호르헤는 패배를 시인하면서 윌리엄에게 책 한 권을 건네는데, 바로 이 문제의 책에 치명적인 독이 발라져 있습니다. 하지만 윌리엄 수도사는 독이 발라진 페이지를 열어 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 책을 보지 않고도 거의 완벽하게 책의 내용을 설명해내어 호르헤를 놀라게 합니다. 이전에 그 책을 손에 쥐어본 적도, 읽은 적은 더더욱 없는데도 말이지요. 이는 책 속의 한 장면이지만, 반드시 어떤 책을 직접 읽어야만 그 책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게끔 합니다. 굳이 이렇게 목숨이 달린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일상생활에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언급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이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책 읽기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독서를 전혀 하지 말라', 즉 독서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책은 시선을 확 사로잡는 제목과는 달리, 기대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책이라고는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이, 읽은 척 거짓말을 둘러댈 수 있는 '처세술'류의 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걸 기대하고 이 책을 펼치셨다면, 약간은 실망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나름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독서’라는 독특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었더라도 사람은 항상 망각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무엇을 읽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는 점에서, 책을 읽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비독서’란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대충 읽은 것,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만 들은 경우, 읽었어도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까지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어차피 이러한 비독서의 상태가 될 것이라면, 이전과는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독서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책이 있고, 당연히 그 많은 책을 모두 읽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읽는다고 해도 물론 다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즉, 모든 책을 다 읽으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설령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부끄러워하거나 움츠러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책을 읽었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책을 매개로 무엇을 느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얼마만큼 잘 얘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니까요. 한마디로, 책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자가 되어 스스로 책을 꾸며내 보라는 것이지요.
능동적인 비독서.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한 층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의의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얘기하는 책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책만큼은 한번쯤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책 읽기의 의무감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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