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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10기 안암지부 협동조 김수연
어렴풋이 기억나는 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지금까지.
내 장래희망의 변천사를 말해보려 한다.
유치원 때는 무조건 선생님.
다행히도 난 정말 인자하신 유치원 선생님을 만났다. 옆 반 애들이 부러워할 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셨고, 마음씨 또한 너무 고우셨다. 그러니 그때 내 우상은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4학년 때까지. 내 장래희망 난에는 항상 '선생님'이란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땐 덧셈, 뺄셈만 잘 하면, 그리고 구구단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으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기에 초등학교 3학년 때, 구구단을 못 외워서 방과 후 나머지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가르치는, 그 떨리고 힘들다는 교생실습을 이미 해버렸다.
내가 무슨 계기로 나의 장래희망이 바뀌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그 어린 소녀의 불타는 정의감 하나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변호사'로 바뀐다. 억울하지만, 돈이 없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의 용사. 혹시 내가 즐겨보던 후레쉬맨이 내 현실에서는 변호사로 바뀐 것은 아니었는지.
모두에게 그런 경험이 있을까?
어릴 적 누군가 나에게 앞으로 어느 학교 가고 싶냐고 물으면, “신성여자중학교(내 모교)를 나와서 과학고를 가고,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에 갈 거예요” 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그땐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란 곳에 대한 존재감이 아예 없었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은 전부 과학고요 하버드대학교인줄 알았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선생님들을 대학생이 돼서 처음 찾아갔을 때, 다 내가 법대에 진학한 줄 아셨다.
고등학교 1학년,
장래희망이 마구마구 바뀌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연히 읽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자서전 '트로이의 부활'의 영향으로 고고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고학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이 필요했고, 난 어디에 뭐가 있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막연하게 무엇인가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존재감은 외계인 뿐이었으니까.
그때 한창 방영되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러브 하우스'는 내가 2학년으로 진학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당시 건축 디자이너로 나오셨던 이창하, 남궁선, 김원철 등은 나의 우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서슴없이 2학년을 '자연 반'으로 갈 것을 택했다. (물론 난 언어, 사회, 한자보다 수학, 과학이 좋았다. 근데 거기에 꿈까지 생겼으니 금상첨화였다.)
2학년이 돼서 친구들과 학교 뒤에 있는 과수원에서 귤 서리나 하면서 신나게 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내 현실 속에 있는 우상 중에 한 분이셨던 친척 고모부께서 나에게 앞으로의 진로와 장래희망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셨다.
지금도 기억난다. 내가 말했던 것은 '고고학자, 건축 디자이너,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우주과학'
그때 내 이야기를 듣고 고모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서 고고학자로 성공할 만 한 모든 것은 다 발굴이 됐다.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 건축은 의욕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자연과학, 특히 지구과학 쪽으로 제일 성공하는 것은 기상캐스터이다.'
그땐 주의 깊게 들었는데, 지금 이렇게 써 보니 어떻게 한창 크고 있는 고2학생에게 저렇게 말씀해주실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난 고3이 되면서 내 모든 꿈을 접고 본래의 길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그 본래의 길이란 법학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서까지 쓰면서 자연 반에서 인문 반으로 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수능을 보고 자기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수능을 보고 난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울었다. 부모님께서는 우선 딸부터 진정시키셔야 했기에 재수도 시켜주시겠다고 하셨고, 나 역시 내 점수로는 아무 곳도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재수를 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늘 현실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1,2,3지망 모두 합격하고 나자 부모님께서는 복에 겨운 소리 한다고, 재수는 무슨 재수냐고대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난 지금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수시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난 참 나약한 존재인 거 같다. 그리고 정확한 내 장래희망이 없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떠날 때, 난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오겠다 다짐했었다.
그러나 갔다 와서도, 4학년이 돼서도 생각하는 건 똑같았다.
얼마 전,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취업이 눈 앞에 닥쳤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앞으로 내가 30대 중반이 됐을 때까지도 장기적으로 길이 보이는 것 같아 지금으로서는 감사하다.
가끔 이렇게 내 장래희망에 대해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지금 내가 있기까지의 과정이니까.
요즘은 모두 정신 없이 바쁠 때이지만 한번쯤 자기의 장래희망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어릴 땐 어떤 꿈을 꿨는지,
지금은 너무 현실에 맞춰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10년 후엔, 20년 후엔 또 어떤 모습을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을는지....